Bokeh를 시작하며.

April 1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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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케를 만드려고 시작한 시기는 중학교 2학년,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지 얼마 안된 시점이에요. 한창 장마철에 공기는 습기가 가득하고 하늘은 대낮에도 어둡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교실의 분위기가 조금은 좋았습니다. 시험이 끝나 할 게 없는 수업시간에는 선생님들은 영화를 틀어주곤 했는데 그치만 영화를 보는 것도 하루이틀이야 즐겁지 1교시부터 하교할 때까지 자리에 앉아 화면만 뚫어져라 보는것도 물리기 마련이죠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던 선생님의 수업시간이 되자 반 친구들은 영화말고 재밌는 건 없냐고 불평을 토로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노트북 가방에서 USB를 꺼내며 노래를 틀어주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저는 사실 별 관심이 없었어요. 15살의 어린 나이지만 “한국 노래는 뻔하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년전 친구로부터 에어팟 터치를 산 후 손안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인터넷을 쓸 수 있다는 잡스형이 만들어낸 신세계를 접한 뒤 제가 가장 푹 빠져있던 건 일본 서브컬쳐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음악은 내 삶 뒤에서 흘러나오는 부수적 요소였다면 본격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 감상한다는 행위를 해본 것이 이때가 처음입니다. 방에 있는 컴퓨터에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ost나 우타이테들의 커버송들을 다운받아 담아놓고 즐겨들으며 똑같은 발라드, 똑같은 사랑노래만 있는 한국노래는 별로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선생님이 틀어주신 곡은 영화 클래식의 수록곡인 그 유명한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었습니다. 누가 들어도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좋은 노래죠. 반 친구들은 한 두명씩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노래가 끝날 쯤엔 저를 제외한 모두가 같이 부르고 있던 것 같습니다. 그 분위기와 노래가 너무 좋아 나도 따라부르며 같은 경험을 느끼고 공유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함에 너무나 아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들은 생각은 두가지였어요. 첫번째로는 창피함이었습니다. 내 선입견 때문에 이렇게 좋은 노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지 못했을 뿐더러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을 놓쳤다는 생각을 했어요. 두 번째는 신기하게도 흥분감이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세계가 넘쳐나는구나. 내 안목을 타인을 통해서 넓힐 수 있고 그곳에는 기분 좋은 경험들이 날 기다려주고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자 뭔가 벅찬 기분이 들었어요.

Bokeh는 그 두가지 감정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매개체가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노래든 게임이던간에 내가 좋아하고 잘 아는 것을 타인에게 공유해주고 타인으로부터 새로운 영역의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체계적으로 또 시스템적으로 잘 구현할 수 있다면 나의 인생의 행복도를 더 높일 수 있겠다. 그러므로 내 취향을 담을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보자.

솔직함

시작은 작은 폴더부터였어요. 보케는 사진에서 초점이 맞지 않은 부분의 흐려짐 또는 그 흐려짐의 미학적인 양상을 뜻합니다. 흐려졌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조그마한 원들처럼 나라는 존재에 여러 색을 더해주는 보케(음악)를 최대한 꾸려보고 싶다는 의미를 담은 Bokeh(줄여서 B)라는 이름의 폴더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100곡을 선정해서 담아듣곤 했습니다. 친구가 최근에 인스타에 올린 게시글에 “좋아하는 노래를 담은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일은 정말 좋아했던 것을 지겹기 그지 없는 하찮은 것으로 바꾸는 일이다” 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너무나 공감가는 말입니다. 수만곡을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 시대에도 해당되는 말인데 고작 100곡은 당연지사 금방 질리기 마련입니다. 자연스레 좋아했지만 질려버린 곡들을 넣어두는 명예의 전당 폴더를 만들었고 이후엔 100곡안에 들어가기엔 부족하지만 그래도 좋은 곡들을 담은 2부리그 폴더, 신인들의 곡만을 모아놓은 폴더 등 발전해가는 내 콜렉션은 내 나름의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리고 스트리밍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노래를 다운받아 듣지 않습니다. 음악을 소유한다는 틀이 깨진다는 것이 처음에는 되게 싫었어요. 내가 이 노래를 아낀다는 것을 소유한다는 행위를 통해 증명하는 의식적인 행위였는데 스트리밍은 무언가 거리감이 멀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잠시고 결국 편한쪽을 택하는 것이 사람이기에 내 자랑거리는 어느새 추억의 유산이 되어버렸습니다.

3년의 고등학교 생활과 2년간의 방황 이후 군대를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헌병이란 직책을 맡았는데 멍때리기 좋아하는 저에겐 나름 좋은 직종?이었어요. 야간근무를 들어가면 차도 몇대 오는게 다라 5시간동안 가만히 서있게 됩니다. 덕분에 생각을 정리하기엔 최고의 시간이었습니다. 보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소유한다는 행위자체는 별로 중요한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틀이었습니다. 수집은 나에게만 향하는 일방향적인 행위입니다. 보케는 타인에게 무언가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내가 잘 아는 것, 좋아하는 것들을 공유해주는 것이 본래 목표였음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1인출판이 가능해진 시대니 1인 소규모 문화 잡지를 만들어 보려고 했습니다. 인디자인도 배워보고 실을 기사도 써보고 준비를 열심히 하던 찰나에 내 수준에 잡지를 쓴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영화를 많이 보는 것도 아니고 음악에 대해 엄청 잘 아는 것도 아닌데 내가 감히 평가하고 그걸 모아서 잡지라는 격식을 차릴 자격이 있을까?

군대에서 만난 A는 서울토박이에 각종 전시전과 문화행사를 섭렵한 자칭 “문화시민”인데요. 그 친구에게 이번 분기에 재밌게 본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하면 벌레보는 표정으로 수준 낮은 걸 보지말라는 이야기를 자주하곤 했습니다. 뭐 친구끼리 하는 농담이였지만 문화의 수준이 있다는 전제하에 나온 농담이었겠죠. 수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나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도 생각합니다. 문화는 때로는 타인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소수의 취향을 통해 나는 남들과는 다르다는 특별함을 어필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하고 무리에 속하기 위해 다수의 취향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취향을 배척하는 과정이 들어가게 되고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곤 합니다.

문화의 수준 또한 취향과 같은 맥락에서 사용되곤 합니다. 누군가는 취향과 다르게 수준은 격의 구분이 실제로 틀리기에 취향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해야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런 것들이 무엇이 중요할까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처받지 않고 당당히 좋아할 수 있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잡지에서 더 나아가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예 취향을 공유하는 플랫폼이 주가 되는 브랜드를 하나 꾸려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목표로하는 특정 집단에게 어필하기 위해 그 집단이 지닌 성격을 브랜드에 녹여내는 것이 당연한 행위인데 누구보다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브랜드라는 점. 플랫폼인데 수익성이 없다는 점. 모순적이기에 더더욱 재밌는 행위가 될 것 같았어요. 시작은 개인 블로그에서 SNS로, 가능하다면 앱, 웹, 출판물 등 내가 할 수 있는 창작행위 전반에 걸쳐서 브랜드를 꾸려나가려고 합니다. 글쎄요 몇사람이 봐줄지는 모르겠지만 이 브랜드를 통해 자신의 인생음악, 영화, 책, 게임을 찾을 수 있는 기쁨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Bokeh는 개인의 문화생활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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